어떤, 다른, 원

작가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열린 감각의 소유자들이다. 일상의 것들에 대해, 소비되는 것들에 대해, 시간이 던져주는 변화들에 대해 우리가 찾지 못하는 소소한 특이점들을 지나치지 않고 고민하는 존재들이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사물들과 그것들의 형태, 그리고 쓰임새까지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재에서 서로의 동질감과 상이함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최근 회화 작업에서 보이는 장은의 작가의 작품들에는 이런 점들이 오롯이 드러난다.

동그란 형태를 지닌 사물 가운데 그 물성이 인공적인 것과 자연물의 결합. 추가로 이 두 가지의 각기 다른 형상의 조합이 주는 접점을 작가는 사물의 위에서 관조하듯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에 맞추고 있다.

필자가 주목했던 점은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닌 소재들의 조합과 그리고 이들의 결합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에 있다.

우선, 작가가 그려내는 상반된 물성의 소재들에 주목하는 것은 글의 첫머리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아주 본능적으로 그런 요소들을 작가 장은의가 느끼고 화면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도자기나 유리 그릇은 단단하고 둥근 형태의 일상생활 재이다. 이 같은 그릇 위에 놓인 과일을 한번 보자. 예를 들어 <두 개의 원 4 _살구와 접시> 작품에서 표현된 둥그스름하게 잘 익은 살구를 보면, 우린 흔히들 ‘참 동그랗게 생긴 살구구나’ 라거나 ‘둥그러니 잘 익은 살구네’라는 관용적인 표현을 쓰곤 한다. 그렇다, 살구는 동그랗다. 그렇지만 이 형태를 중심축에서 자로 재어 보면 어떨까. 중심점을 두고 컴퍼스로 동그랗게 동일한 각도로 돌렸을 때의 원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둥근 자두, 둥근 사과라 표현한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표현들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수적으로 체계화된 범주에서의 원이 아닐 뿐이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각도를 지닌 와인 잔 안에 탱글탱글한 포도 알맹이 하나가 들어있다. 단단하고 무생물의 물체이자 완벽한 원. 그 안에 놓인 포도알은 무디고 자연물이며 대략적인 원으로 불리는 형상이다. 이 두 개의 원이 만났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작가는 사물에서 90도의 시선이 내려다보는 지점으로 시점을 옮김으로써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작가는 캔버스에 작품을 시작하기 앞서 카메라를 통해 사진 촬영을 한 뒤, 이를 기반으로 작품에 임한다. 이는 이전의 작가가 영상과 설치를 주된 매체로 다뤄왔던 것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읽힌다.

카메라의 시선이 곧 작가의 시선임을 감안할 때 작가의 관찰 지점이 위에서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두 가지의 다른 물성이오롯이 그 자체의 형태만을 드러내는 각도라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이 작품 <두 개의 원 2_ 포도알과 와인 잔>은 잘 익은 포도가 숙성을 통해 술이 된 뒤에 담기게 될 물체가 지금의 포괄 체인 와인잔임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의미들이 더욱 함축되었음을 상기해 볼 수 있겠다. 이런 중의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이 함축된 작품으로 다른 작품 <두 개의 원 5_대포와 사과>를 들수 있다. 인간을 상해하는 무기인 대포와 종교적으로 과학적으로 인간에게 유용했던 과일인 사과의 결합이 주는 이미지는 다른 작품들에서 보이는 에너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하고 있다.

유리컵 안에 살구가 담겨 있는 이미지를 상상해 보자. 투명한 그곳안에 잘 익어 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살구를 옆에서 관찰하게 되면 어떻게 보일까? 자두의 형태는 몰라도 유리컵은 사각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형태 간의 결합 지점을 그대로 그려내는 시선에 작가의 관찰 지점이 머물고 있으며, 또한 서로 다른 물체들이 서로 다른 원을 드러낸다. 카메라의 렌즈와 작가의 시선은 서로 다른 듯 같은 지점을 향한다.

작가가 표현하는 소재들은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라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장은의는 이 두 가지의 상반되고 다른 물성과 쓰임과 형태들을 포함한 많은 중의적 의미들에 작가의 관심을 기울여 현재의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 흥미로운 두 물성의 결합을 관조하는 듯 관망하는 듯한 각도에서 내려다본다. 작가의 작업이 화려하거나 휘황찬란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작가가 원하는 바도 아닐 듯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첫인상의 강렬함보다는 두 번, 세 번 마주했을 때 매력 있는 사람이 더 기억에 남고, 다시 보고 싶어지듯 작가 장은의의 작업이 그러하다. 자꾸만 곱씹게 된다. 입안을 맴돌 듯이 말이다.

이진성(소노아트 대표)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