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여정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반응하며 변화해 가는 여정 속에서 각자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 장은의 작가는 세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현시대와 맞지 않게 고요한 마음으로 관조하며 자신의 삶과 예술창작을 계속 되새김질 하는 느린 미학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선택한 긴 여정 속에 그림과 설치(영상, 사진, 오브제 등)의 매개체는 서로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밀접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작용한다.

원형의 공간

장은의는 본격적으로 작업해 온 지 7년이 되었다. 생각의 경로, 그 경로의 터널 끝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자신의 색깔을 보이기 시작했고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시점이다. 이즈음에서 작가는 스스로 형식이나 태도에 있어서 바뀌는 전환점에 서게 된다. 내면의 자아와 외적인 자아의 충동과 갈등이 일어나고 시선의 관심이 바깥으로 이동한다.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는 모를 그런 대상에 호기심과 관심이 유발되고 작동되어 이것이 쌓이다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다. 여기서 작가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최면의 상태로 들어가 장소, 기억, 감정, 현상 등이 혼재되어 일어나는 순간을 맞는다. 단순히 호기심에 그치지 않고 영감의 근원적인 대상으로 작용한다는 필연의 순간임을 암시받는다.

그는 세상을 무의식의 경로로 인식하게 된다. 타자(고전, 소설, 철학, 과학도서 등의 책과 자연)와 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삶의 스토리가 다 다른 견해 차이로 인해 수많은 틈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작가에게는 창작의 동력이 되고 있다. 보편적인 논리일 수 있지만, 그 관계는 또 다른 상상이나 추상적인 공간을 낳게 되고, 나아가 무의식의 통로에서 자신만의 기억 창고의 방을 마련하게 되며, 그러한 저장방식이 이 작가에게는 중요한 은신처이자 새로운 창작을 발산시키는 에너지로 환원된다. 그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사람을 만나고 공간을 만나고, 그 속에 깃든 삶의 에피소드를 이미지로 대화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 원형의 근원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공백의 시간

국내 미술대학 졸업 후 그에게 선택의 귀로에서 주어진 공백의 시간은 여느 작가들에 비해서 긴 편이다. 이 시기는 창작에 대한 열정과 학구열을 위해 독일 유학 간 기간도 포함되지만, 원인도 모른 채 창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상 자체에 마음이 더 치중되었다. 필자의 생각은 이공백이 전략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한다. 이 공백은 마치 섬과 같다. 섬은 입구, 출구가 없는 곳이다. 폐쇄된 독립 그 자체다. 그 섬에는 자신이 감지 못하는 꿈이 땅 밑에서 도사리고 있다. 농부가 땅을 갈아 농사를 짓듯이 그곳에서 홀로 경작을 하며, ‘글-문자’를 쓰며, 노래도 부르고 온갖 짓을 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는다. 떨어지고 추락하는 맛을 보다 단절로 인도되는 길이 섬이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사유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그 섬을 자유자재로 대지 미술로 만들었다가, 쓸 수 없는 가면으로 위장하다가, 무형의 변이체로 때로는 숲의 정원을 만들기도 한다. 세상은 보지 못한 것을 찾는 자에게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가 설정해 놓은 섬은 사색과 사유를 끝도 없이 지속하기 위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중력도 없는 사색 공간. 밭을 경작한 땅에 그는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고 빛을 쏘이며 길을 내고 집을 짓고 하는 일을 2013년부터 회화 및 설치로 수행한다.

사색의 공간

세상과 자아를 향한 장은의의 관점은 세밀하고 폭이 넓다. 그는 세상의 거대한 시스템에 역행하여 개인사와 이와 관련된 시간과 장소를 되돌려 기억이 환원되는 지점을 사유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채워진 곳보다는 빈 곳을 응시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사라진 곳, 그 곳을 생각하며 응시하거나 관찰한다. 설명할 수 없거나 표현할 수 없는, 계획 없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언어화 되지 못하는 대상을 계속 쫓는다.

결과적으로 장은의의 시각적 행위는 공간과 인간의 ‘사이 공간’에 대한 사유에 기인한다. 그 ‘사이 공간’을 더듬어내고자 그는 객체(타자)와 주체(나) 사이의 이분법적 구별을 거부하는 동양 사상의 전반적 흐름을 자신들의 몸과 정신을 통해 사유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실천으로 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흔적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특정 공간들은 대화를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그곳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는 무형의 공간이지만, 삶의 작은 에피소드로 쓰여 지면 휴머니티로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관훈(Project Space 사루비아 다방 큐레이터) 2019